처음에는 북성안에 있었으나 중간에 동문 밖으로 옮겼고, 다시 서성안으로 옮겼으나 효종 41년인 1653년 이원진 목사가 현재의
위치인 단산 아래쪽으로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뒤 대성전은 현종 10년인 1669년, 숙종 14년인 1688년, 영조 28년인 1752년, 헌종 1녀인 1835년에 중수하였고, 명륜당은
영조 48년인 1772년에 중건하였다. 이렇듯 여러 차례의 중·개축을 거친 뒤, 1993년에는 남제주군에서 대성전을 다시 중수하게
되었습니다. "명륜당"이라는 액자는 순조 때 변경붕 현감이 주자필을 본받아 게시하였고, 대정현 훈장 강사공은 이 고장에 유배왔던
추사 김정희에게 요청하여 "의문당"이라는 액자를 받아 게시하였습니다.
현재 대정향교에 보관되어 있는 "의문당"이란 액자를 살펴보면, 『도광이십육년 병오 십일월 일 진주후인강사공 청적소전참판
김공정희 제액근게 각자향원오재복 공자탄진이사칠구년 무진춘재게』라 하였으므로, 각자는 향원 오재복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강사공은 1811년은 삼강오륜을 상징하는 소나무 세 그루와 팽나무 다섯 그루를 대성전 뜰에 심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자연 재해와 관리 소홀로 인하여 거의 고사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경내에는 각 5칸의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 신삼문·대성문·동말문·동정문 등이 있으며, 제주에 있는 세 향교 중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성정에는 정위와 배형 4성위, 송조 4현과 우리 나라 18현인 후형 22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향교는 1971년 8월에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 4호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4월 1일부터는 문명학원을 병설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장된 전적으로는 <대정향교절목> 등 18종 37권이 있는데, 유교경전의 집주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적과 노비 등을 지급받아 훈도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로 석전제와 초하루·보름에 분향만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운영은 제주도 향교재단에서 맡고
있습니다. 단산을 등지고 앞으로 송악산을 바라보면서 자리해 있는 대정향교는 읍성이 있던 보성리로부터 4㎞ 남짓 떨어져 있습니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께 제사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세운 국립교육기관을 가리킨다.
대정향교는 조선 태종 16년(1416)에 세웠는데 이후 터가 좋지 않다하여 여러 차례 옮기다가 효종 4년(1653)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영조 48년(1772)에는 명륜당을, 헌종 원년(1834)에는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할 때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전한다.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북향하여 자리잡고, 뒤쪽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이 남쪽을 향하여 자리잡고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서재, 내삼문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운영하였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으며,
1948년부터는 문명학원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대정향교절목』등의 책이 남아있는데 유교경전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대정향교는 많은 보수로 인하여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장식이 검소하고 단청을 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간결한 느낌을
준다. 주위에 큰 소나무가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이 향교는 태종(太宗) 16년(1416)에 대정성(大靜城) 안에 창건된 후 여러 차례 옮겨지다가 효종(孝宗) 4년(1653) 현 위치에 이건(移建)
되었다. 경내에는 남쪽에 명륜당(明倫堂)이 북향하여 자리잡고 그 북쪽에는 대성전(大成殿)으로 가는 삼문(三門)이 있으며, 이 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남쪽을 향하여 서 있다. 헌종(憲宗) 원년(元年)(1835)에 중건(重建)된 대성전은 정면 5칸에 전퇴(前退)가 있는
1고주(一高柱) 5량(五樑)집이며 특히 초가지 밑의 조각은 장인(匠人)의 자유분방한 의지를 보여 준다. 그 지붕은 제주도의 다른 건축물
처럼 합각이며 수키와가 이어지는 곳에는 회모르타르를 발라 전체적으로 밝은 빛을 띠게 하였으나 지금은 많은 보수로 말미암아
본래의 맛은 드러나지 못한다 하겠다. 명륜당은 영조(英祖) 48년(1772)에 중건된 건물로 정면 5칸 전후 좌우퇴로 된 평면의 굴도리집
이며, 장식이 간결하고 단청을 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강건한 느낌을 준다.